우리는 가이드 북에 나온 관광지 중 야경이 멋진 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런!! 프랑크푸르트는 사실 독일 교통의 요충지일 뿐이지.. 여행자들이 좋아할만한 관광명소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정말 이 도시가 명소 맞아??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볼 것이 없었다.. ㅡ_ㅡ;;
볼거리 위주로 여행을 다니냐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볼 것 없는 여행은 여행은 앙꼬없는 찐빵이나 다름
없지 않은가..
맛집을 찾아다니라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단돈 600유로만 들고온 가난한 여행자였다..;;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그나마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볼만하다는 뢰머광장이었다.
뢰머 광장 뒤편의 거대한 성당은 처음 볼 때는 압도적이었지만.. 아쉽게도 공사를 하고 있는데다 뾰족하기만 해서
별 감흥은 없었다.. (나중에 다른 성당들을 보니 귀엽다는 생각이 들 정도..;;)
게다가.. 날씨도 너무 안좋아서 성당 중간층은 뿌연 안개 때문에 보이지도 않았다..
그 옆의 뢰머 광장은 월드컵때 단체 응원도 했었고.. 역사적으로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곤 하나..
보기엔 그냥 넓쩍하게 만들어놓은 광장에 불과했다..
아니.. 생각해 보니 그때 당시엔 약간 감탄하기도 했었던 것 같다..
“이게 바로 독일이야!!”
“저 오래된 게르만 풍의 집들을 보라구~!” -0-)
이렇게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생각해 보면 나중에 보게 된 프라하나.. 다른 도시에 비해 보잘 것 없어서 이렇게
쓰고 있는 건 아닌지..
아무튼.. 아까도 말했듯이 생각보다 작았던 프랑크푸르트였기에.. 애초 내일 보기로 한 쇼핑의 거리 - 차일거리(Zeil
Street)를 비롯해서.. 마인 강가까지 딱 1시간 만에 다 돌아볼 수 있었다. 그렇게 다 보고 나니.. 가이드
북에 나온 관광지는 거의 다 본 셈이었다.. -_-;;
허무한 마음을 달래고자 저녁을 먹기로 했다.
처음 식사이니 전통식사를 먹어보자, 소시지를 먹어보자 등 말이 있었지만 용기없던 우리는.. 결국 여행자들의 영원한
레스토랑.. 버거킹에 들어갔다.
결국 여기서 일이 터지고 말았다.
너무나도 안전했던 독일의 분위기 탓이었을까..
처음 비행기에서 내릴 때의 긴장은 어디론가 다 사라져 버리고.. 마음 편하게 햄버거나 먹자..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날의 그 기분은 정말 묘하다..
큰 일을 당하려면 원래 그렇게 느슨해 지는 법인지..
카메라 가방을 옆에 두고 후배들과 이야기를 하며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뒷자리에 앉아있던 남자 네 명이 일어서서 매장을 나갔다.
슬슬 갈 시간이 됐나.. 싶어 시계를 보니 8시 40분.
“야.. 치우고 숙소로 가자..”
옆을 보니 가방이 없다..
순간 눈앞이 아찔했다.
이렇게 놀랬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까 그 네 명임을 직감하고 매장 밖으로 뛰쳐나와 주위를 둘러봤다.
저기 200m 쯤 앞에서 그 네 명이 걸어가고 있다.
죽을 힘을 뛰었다.
그 네 명이 이야기 하다가 순간 뛰어오는 나를 돌아보더니..
갑자기 미친듯이 도망친다..
분명히 봤다..
그 놈들 손에 들려있던 내 카메라 가방..
그렇게 두 블록을 쫓아갔을까..
거리가 좁혀질 듯 말 듯 하더니..
갑자기 옆쪽 골목으로 사라졌다..
그게 끝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할 때부터 찌푸둥 했던 날씨는.. 진눈깨비가 되어 질퍽하게 날리고 있었다.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카메라 없이 이제 어떻게 여행할까 하는 생각부터..
비행기표 일정 바꿔서 내일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까..
항공권 티켓을 혹시 저 가방에 넣어놨던 건 아닌지..
바로 옆자리에서 집어가도 몰랐던 내 자신이 너무 바보같았고..
바로 앞자리 앉아서도 전혀 눈치를 못챘던 후배들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은 모든 게 다 내 책임이다..
자기 것 하나 책임지지 못하면서 무슨 여행을 하겠다고..
그렇게 온갖 생각을 하며 한참을 길바닥에 엎드려 있다가..
이젠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음을 느끼고 일어섰다.
비교적 넓찍한 길이었는데.. 후배들도 안보이고.. 나 혼자였다..
무섭기까지 했다..
겨우 길을 더듬어 다시 버거킹까지 돌아와보니 후배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녀석은 다른 길로 돌아가서 잡으려고 했는데 길을 헤멘 것 같고.. 다른 한 녀석은 레스토랑에 상황설명을 하고
있었나 보다.
버거킹 매니저에게 말을 했더니 대뜸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그런다.
내가 저쪽에 CCTV있다고 하니 독일어로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경찰서 어디 있냐고 물어보니 길 끝쪽으로 가보란다..
사람들이 변했다..
아니.. 내가 변했나..?
바로 1시간 전만해도 모두들 친절한 사람들이었는데..
이제 길을 묻는 사람들마다 다들 제 갈길 바쁘고.. 엉뚱한 길 가르쳐 준다.
결국 5분이면 갈 수 있었던 경찰서를.. 한시간 넘게 헤메고서야 찾을 수 있었다.
무슨 일이든 간에.. 경찰서를 찾아온 사람들은 그들에게는 불편한 일일 것이다. 특히 여행객은..
후배들은 대기실에 기다리게 하고 나 혼자 들어가서 상황설명을 했다.
도둑맞게 된 경위부터 인상착의, 도난 물품 등.. 한 시간에 걸쳐서 레포트를 작성했다. 나도 영어가 능숙한 편은
아니었고.. 유일하게 영어를 쓸 줄 알던 독일 경찰도 능숙한 편이 아니라 대화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럭저럭
정황을 설명할 수 있었다.
도난물품을 적다 보니 잃어버린 게 꽤 많았다.
우선 DSLR카메라와 렌즈 두 개, PDA, mp3플레이어 겸 백업장치, 핸드폰.. 대충 이정도 신고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더 많은 것이 들어있었다. 가이드북도 있었고, 오다가다 친절한 외국인 만나면 선물 할려고 남대문에서
사간 전통문양 책갈피도 여러 개 있었다. 좋은 사람 줄려고 했는데 아이러니 하게 가장 나쁜 놈들이 가지게 된 것이다..
한국 와서 알게 된 것이지만, 운전면허증과 은행카드 등도 잃어버렸다.
참 바보 같다. 왜 그렇게 중요한 것들을 하필이면 그때 가방에 몽땅 넣어놓은 건지.. 평소엔 항상 자켓 주머니에
넣어두던 mp3플레이어도 하필 그땐 가방에 넣어놨다. 그것도 이어폰은 숙소에 둔 채로..(그럴려면 왜 가져왔지?)
뭔가를 잃어버릴려면 그때 중요한 것을 다 몰아넣곤 한다던데… 내가 딱 그 케이스였던 것 같다..
아무튼 목록을 줄줄히 써내려갈 때.. 황당해 하던 그 경찰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내가 미쳤지..
그렇게 레포트를 다 쓰고 나니 시간은 어느새 11시..
한국 시간으로 아침 7시다..
완전 기진맥진했다.
빨리 숙소에 가고 싶었지만 택시비가 겁나서 지하철을 타고 갔는데..
후배가 어느 역에서 내리면 유스호스텔을 쉽게 갈 수 있다고 해서.. 믿는 셈 치고 그쪽으로 갔다. 사실 버스시간도
끝나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그런데 아뿔싸..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분명 지하철 역에서 나올 땐 이 근처다… 싶었는데..
아무리 가도 가도 숙소가 안나온다..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어도 길가는 사람이 보이질 않았다..
좀 익숙해진 길이 나온다.. 싶더니 따라 걷다보니 또 그 길도 아니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우리가 반대쪽으로 걷고 있었다..
즉, 아까 중앙역에서 숙소쪽으로 타고온 버스 길을 반대로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걸어가면 결국 다시 중앙역이 나오겠지..
그 생각이 들자마자 완전히 다리가 풀려버렸다.
더 이상 못걷겠다 싶어 택시를 잡아 탔다.
왠걸.. 택시로 겨우 5분 밖에 안걸리는 거리에 우리 숙소가 있었다.
그날은 왠지 귀신에 홀린 것 같았다..
아까 경찰서 찾아다닐 때도 그렇고.. 왠만한 길은 지도보고 찾는 내가 이렇게 길을 헤메다니..
정말 미칠 것 만 같았다..
방에 들어오자 마자 대충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침대에 누웠다.
눕자마자 오늘 있었던 일들이 파노라마 처럼 지나간다..
32시간의 하루..
너무도 긴 하루였다..
갑자기 또 도둑맞은 일이 떠오른다.. 가방을 들고 도망치는 모습..
눈물도 날 것 같고.. 그냥 이불 뒤집어 썼다..
정말 싫었다..
여행이고.. 사진이고.. 유럽이고 뭐고…
다 싫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