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골목길을 헤맸을까..
정처없이 떠돌아 다녔다는 말이 오히려 맞을 수도 있겠다.
딱히 어딜 가야겠다고 목적지를 정해놓지 않은 우리는 그냥 그렇게 빈 골목길을 따라 걸어다녔다.
어느 골목길에서는 한창 공부하고 있는 도서관이 있어서 들여다보기도 하고, 일부러 한두명이 지나다닐 만한 좁은
길도 지나가봤다.
혼자 여행 다녔으면 위험하다고 꿈도 못꿨을텐데.. 이것이 일행이 있을 때의 좋은 점 아닌가 생각됐다.
서서히 으슬으슬 추워질 무렵, 우리는 어디론가 목적지를 찾아 가기로 하고 우선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다행히 빈 중심가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아서 금방 찾아갈 수 있었다.
국회 의사당을 가보자!!
딱히 어딜 가겠다라는 목적도 없었기 때문에.. 나도 그렇고 후배녀석들도 군말 없었다.
오히려 추웠으면 내가 더 추웠던 것 같다. ㅠ_ㅠ (옷을 얇게 입고 왔더니..)
국회 의사당은 마치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모방한듯, 커다란 열주식 기둥과 그위에 받들어져 있는 거대한 석조
지붕이 장관이었다.
눈씻고 찾아봐도 사람 하나 발견하기 힘들었지만.. 조명이 모두 들어와 있어서 둘러보기엔 그럭저럭 괜찮았다.
하지만 사진을 다 찍고 난 후에 역시 목적의식 상실-_-한 우리들..
이번엔 어딜 가볼까???
빈 자체가 지금까지 시달려 왔던 다른 도시에 비해 정말 차분하고 조용한 도시라서 맘에 들었지만..
왠지 시끌벅적한 관광지의 느낌이 나지 않으니 또 심심하기 짝이 없다.. 사람은 간사한 동물이야!! 프라하에선
그토록 사람 많은게 싫더니..
국회 의사당을 열심히 바라다보고 있으니 저 멀리 이상한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뭔가 엄청나게 거대하고.. 중세시대의 것인마냥 외관 장식 또한 화려하다.. 중앙에는 커다란 시계도 보인다..
뭘까..? 하고 궁금한 마음에 그쪽을 향해 걸어가는데, 건물 뿐 아니라 시끌벅적한 소리들도 점점 들려온다.
앗~!!
축제다~!! ^0^)/
멀리서도 보였던 거대한 건물은 빈 시청사, 그리고 그 앞에서 오늘 겨울축제가 열리고 있던 것이었다.
그토록 찾아헤매도 꼭꼭 숨어버린 듯 자취하나 없던 사람들이 여기 다 모여있었다.. ㅡ,.ㅡ
어제 처음 빈에 도착해서 여기 사람들은 밤문화를 즐길 줄 모른다며 속으로 비아냥 거렸었는데 그말을 취소해야 할
것 같다.
넓은 스케이트 장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스케이트, 컬링 과 같은 놀이를 즐기고 아저씨들은 그 추운 날씨에 차가운
맥주에 뜨끈한 소세지를 곁들여 마셔가며 흥을 돋구고 있었다.
우리가 그 살인적인 추위에 발가락이 오그라들고 벌벌 떠는데도 =,.= 여기 사람들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그렇게
즐겁게 놀고 있었다.. (이러니 우리나라가 동계올림픽을 못할 수 밖에 없지.. ㅠ_ㅠ)
그렇게 축제장 여기저기를 구경다니다가 스케이트 장 가장자리에 서서 사람들이 스케이트 타는 모습을 지켜봤다.
생각해 보면 참 웃기겠지. 왠 구리구리한 동양남자 세명이 자기네들 축제장에 와서 스케이트도 안타고 손가락만 빨고
있는 모습이라니..
마치 우리나라 이마트에 신기한 눈으로 두리번 거리는 동남아 근로자들 같은 느낌이었겠지..
아무튼 그런건 개의치 않고 구경하는데..
우리 일행 앞에서 친구와 함께 스케이트를 배우는 귀여운 소녀 한명이 눈에 띈다.
후배들 눈치를 보니 모두 그쪽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짜쉭들 -_-
턴 묘기를 시도하는데.. 어쩌다 한번씩 성공하면 우리가 박수도 쳐주고 하면서(푸햣^^) 구경했다.
'나도 타고 싶다..'
'나도 스케이트를 신고 저들 사이를 달리며 추위를 잊고 싶다..'
'나도 스케이트를 타고 저들과 함께 즐거운 축제를 보내고 싶다.. 왜 난 그렇게 못할까?'
그렇게 스케이트 타는 모습을 보는데 문득 왜 나는 스케이트를 배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스케이트 대여비용이 비쌌던 것도 아니고.. 탈 수만 있었다면 그들과 함께 축제를 즐기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여행 초반에 감당하기 힘든일을 당하고 상심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스케이트를 배우지 않으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다. 언젠간 배워야지 배워야지 하면서도 미루다 보니 결국 나는 탈
수 없던 것이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겪는 일도 마찬가지다.
인생에서 기회는 생기기 전에 미리 예고하지 않는다. 단지 기회가 다가왔을 때 내가 할 수 있느냐, 할 수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나중에 닥칠때 하면 되지 않겠냐고.. 언어든, 공부든, 운동이든.. 미리 준비하지 않고 항상 그렇게 임기응변으로
대처한다면..
나에게 다가오는 기회를 모두 놓쳐버릴 것이다.
나는 앞으로 나에게 다가올 기회를 움켜쥐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축제장을 떠나 숙소로 돌아오는 동안.. 그리고 침대에 누워 잠이 드는 순간까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