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카메라는 없지만.. ㅠ_ㅠ 알프스에서 일출을 꼭 보고 싶어서 새벽에 일어나기로 했다.
알람시계가 없던터라 혼자 휴대폰을 들고온 성우에게 아침에 깨워달라고 부탁하고..
예전에도 그랬지만 성우는 항상 새벽에 혼자 벌떡벌떡-_- 일어나므로.. 별 걱정없이 잠들었다.
얼마나 됐을까..?
누군가가 흔들어 깨운다. 주위는 아직 어둑어둑 한데 성우가 벌써 옷까지 다 갖춰입고 서있다.
새벽에 일어나야겠다고 마음먹고 잤지만.. 막상 아침이 되니까 졸립기도 하고.. 춥고..
일어나기가 싫은거다.. ㅎㅎ (성우야 미안하다~ ㅋㅋ)
"야~ 야~ 그냥 너 혼자 일출사진 찍으러 가라.. 형 더 잘란다~" 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다시 돌아누워 눈을 감았는데.. 얼마나 지났을까..? 눈이 저절로 떠진다.
'뭐야! 아직 새벽이잖아! -_-;;;;'
성우 이녀석.. 또 새벽 3시쯤에 깨웠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옆을 돌아보니 삐졌는지 옷입은채로 침대에 누워있다.
ㅎㅎ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삼각대를 들고 나가려니 성우가 자기도 따라 가겠다고 나선다.
내가 카메라를 잃어버린 후로 우리 일행 중 가장 좋은 카메라를 가진 성우는 사진 찍을 때마다 으쓱으쓱 한다.
가끔 작가처럼 폼도 잡는다. 우리는 그때마다 '조작가'니, '박작가'니, '정작가'니 하면서 서로를 놀렸다.
ㅋㅋ
암튼.. 밖을 나가보니 이제 막 동이 터오려는 듯 하늘이 밝아온다..
"오............. 마이 갓....."
세상에 또 이런 풍경이 어디있을까..? 마치 하늘 속에 호수가 있는 것처럼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호수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푸른 빛이 세상을 감싸고 있었다.
지붕에 쌓인 눈이 살며시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고요함. 가로등 만이 길을 밝힌 채, 그렇게 할슈타트의
아침이 찾아오고 있었다.
이내 추위도 잊어버린 채 이 멋진 풍경을 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호숫가로 뛰어갔다.
호숫가는 몇마리 물위에 떠있는 오리 몇마리를 제외한 채, 미동 하나 없을 정도로 고요하다..
그동안 답답하게만 느껴지던 자욱한 구름과 안개는 푸른빛과 어울려 더욱 미묘한 색깔을 만들어 낸다.
아름답다 못해.. 전신이 오싹할 정도로.. 신비롭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행여나 이 푸른빛을 담지 못할까봐.. 구름 한점이라도 놓쳐버릴까봐..
그렇게 정신없이 찍다보니 어느새 주위가 환하다. 성우는 옆에서 몇장 찍다가 졸리운지 들어가자고 보챈다.
성우더러 먼저 들어가라고 하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호숫가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하는 사람들, 이 작은 시골에서도 어딜 그렇게 급히 갈 곳이 있는지 새벽부터 채비하는 사람들..
이 추운 겨울에 얇은 옷을 입고 운동하는 사람들.. 그리고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는 할머니..
내 기억 속의 푸른 세상은 꿈과 같이 사라져 버리고 어느새 일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쉬웠지만.. 아쉬움이 있기에 감동도 더욱 클것이라 믿고.. 오던 길을 되돌아 숙소에 왔다.
계획에는 할슈타트에서는 1박하고 바로 독일의 뮌헨으로 이동하기로 되어있다.
한달씩 되는 여행이면 하루쯤 더 쉬면서 좀 더 구석구석, 차분히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하루하루 일정이 촉박했던지라 오전에 오는 배를 타고 이곳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어제 오후에 부푼마음을 안고 탔던 그 배를 다시 타고..
일렁이는 수면 위로 이지러지는 할슈타트를 바라보며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토록 원하고 간절히 바라던 것을 이루는 기분이 고작 이런 허전한 기분일까..
이것이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었을까.. 나는 무엇을 얻고자 그토록 이곳에 오고 싶었던 걸까..?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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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슈타트에서 다시 꼬마기차를 타고 짤즈부르크로, 짤즈부르크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4시간을 오면 뮌헨에 도착한다.
중간에는 국경도, 여권을 검사하는 사람도, 국경도시의 우울함도 없다.
단지 창밖의 눈오는 풍경과.. 책보는 할머니, 그리고 수다를 떠는 아이들 뿐이다.
일주일 만에 다시 독일로 돌아온 것이다.
뮌헨은 다른 독일 도시와 마찬가지로 교통이 잘 갖춰져 있을 뿐만 아니라, 이용하기도 편리해서 굳이 독일어를 몰라도
여행다니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게다가 숙소를 중앙역 부근의 유스호스텔에 잡으니 가격까지 저렴해서 금상첨화!
여행 초반, 피곤하다는 핑계로 3인실을 썼던 우리는 이번에 처음으로 도미토리를 이용하게 되었다.
태국여행 다닐 땐 몇번 써보긴 했어도 유럽에서는 처음이라.. 어떤 분위기인지 궁금했는데, 별반 다를 게 없어보였다.
단지 항상 불을 꺼놓아서 움직일 때나 책 보고 싶을 땐 좀 불편했지만 시설도 깨끗하고 부속식당도 분위기가 좋아서
마음에 든다.
짐을 풀고 잠깐 씻으려고 지하 샤워실에 내려갔다.
안경을 벗고 내려간터라 더듬더듬 표지판을 확인해가며 샤워실에 도착해서는..
간단하게 세수를 하려고 세면대에 물을 받고 있을 때였다.
샤워실이 칸칸마다 시설이 잘 되어있어서 '햐~ 역시 선진국이군~'하면서 감탄해 하고 있는데..
외국 여자애 하나가 들어온다..
날 보더니 화들짝!! 놀라길래.. 내딴에는 안심 시키려고 저쪽 샤워칸에 들어가서 하라고 알려주니 뭐라뭐라 하면서
(영어는 아닌데.. -_-) 다시 나간다.
'이상한 애 다있네..'하고 세수만 짧게 하고 나서는데..
'아뿔싸..'
샤워실도 남녀가 분리 되어있었다.. -_-;;;
그러니까 남자샤워실, 남자화장실, 여자샤워실, 여자화장실 이렇게 총 4개가 있는 것이었다..
여자화장실 위치만 확인 후에 당연히 옆은 남자화장실이겠지.. 하고 여자샤워실로 냅다 들어가버린 것이었다.. ㅠ_ㅠ
이런 어글리 코리안 같으니라구..
Bar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춘이와 성우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니 배꼽을 잡고 웃는다.. 이런 추태가.. ㅠ_ㅠ
여하튼 -_-;; 각설하고,
뮌헨에 왔으니 그 유명하다는 '호프 브로이 하우스'에 가보기로 했다.
단일 호프집으론 가장 크다나 뭐다나.. 아무튼 최대의 맥주축제인 '옥토버 페스트'로도 유명하고..
고등학교 때 나를 여행에 빠져들게 했던 독일어 선생님이 말한 바로 그곳이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고)
지하철을 타고 뮌헨 시청사 앞에 내려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이곳은 독일인보다 타지에서 온 사람이 더
많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또 독일 길거리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흥겨움을 느낄 수도 있는 곳이다.
난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독일사람들은 전부 성인 군자 양반들인 줄 알았으니.. -_-;;
어쩜 이리도 놀이문화가 없는지 참 연구해봐야 할 노릇이다.(아니, 우리가 못찾은걸까? ㅠ_ㅠ)
흑맥주와 생맥주를 시켜놓고 탁자에 앉아있는데 앉아있기만 해도 절로 흥이 난다. 왁자지껄한 사람들과 쉴새 없이 각
나라의 노래를 틀어주는 밴드.. 우리나라 아리랑도 틀어준다. ㅎㅎ
여름에는 이곳이 신촌의 어느 호프집을 방불케 할 정도로 한국사람들이 넘친다는 데.. 오늘은 그리 많이 보이지는
않는다. 역시 비수기이긴 비수기인가 보다..
오늘 이곳에 온 이유는 호프브로이하우스를 구경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보다 큰 목적은 오늘 다른 여행팀을 이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주최하는 세계교육기행단 선발팀 중 독일로 가는 팀은 우리팀과 다른 한팀이 더 있었는데, 발대식때 오늘
이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던 것이었다.
'여행일정이 자주 바뀔텐데.. 과연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반신반의 했지만..
겸사겸사 맥주도 마시고 혹시 만나게 되면 반가울테고.. 그렇지 않을까? ^^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질 않았다.. -_- (바람 맞았다)
그 팀은 오늘 BMW공장을 견학하고 저녁에 오겠다고 했는데.. 여행 일정을 변경했나 보다.
호프집 정문에서 만나기로 한터라 계속 기다리다 지쳐 그냥 테이블로 돌아가려는데..
앞쪽에 우리나라 사람으로 보이는 여학생 둘이 앉아있는게 보였다.
갑자기 재밌는 생각이 들어서 무턱대로 그쪽으로 가서..
부킹했다.. -_-)/ ....(물론 YES)
내 인생 27년만에 처음으로 부킹을 해보다니.. 그것도 이역만리 타국에서.. (감동)
물론 내가 궁해서 그랬던 건 아니고..*-_-* (부끄부끄)
외롭게 여행하는 성우와 기춘이가 너무 불쌍해서.. 내가 발벗고 애정전선에 뛰어든 것이었다.. (진짜로!! -_-;;)
성우와 기춘이를 데려다 한테이블에 앉혀놓으니..
아뿔싸..
분위기가 급랭한다.. -_-;;
맨날 공대 지하 독서실에 앉아 공부하던 넘들이라서.. 숫기 없음으로는 옛날 '프란체스카'에 나왔던 왕수줍 디자이너
장광호를 제치고 1,2등 할 수 있을 거라 나름 짐작해 본다.. -_-
아무튼 그렇게 썰렁한 분위기 속에..
애꿎은 비싼 맥주만 원샷하고.. -_-
누가 썰렁한 유머 한마디만 하면 즉시 다굴모드.. (그 분위기 알지요? "아~ 왜그래~" -0-)
그렇게.. 찬바람만 불다가 쓸쓸히 헤어졌다.. -_-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성우가 생각보다 마음에 들어했던 것이..
그동안 그토록 먹을 거 하나 안사주던 그녀석이.. 그 비싼 쇠고기 돈까스 안주를 주문했더라는..
그렇게.. 뮌헨에서의 추억이라면 또 이상한 추억(?)을 남기고..
남자들끼리만 있으면 말 잘하는(!) 후배 둘을 데리고 다시 숙소로 향했다..
맥주를 한잔 해서 그런지.. 잠이 잘오는 밤이었다.
